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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은하수로 가는 방법 / 신영전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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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깊은 생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고 성능의 컴퓨터가 나온다. 마그라테아 행성인들은 750만년을 기다려 이 컴퓨터로부터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질문”의 해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42’였다. 그 ‘42’가 뭐냐고 다시 물으니 ‘깊은 생각’은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해답, ‘42’의 의미 역시 알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그 ‘진짜 질문’을 알기 위해 소설의 인물들은 다시 천만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래서 그 ‘진짜 질문’을 찾았을까? 더글러스 애덤스는 2001년 이 소설을 끝내지 않고 헬스장에서 심장마비로 우주로 떠난다. 그의 소설과 삶 사이에 구별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하여튼, 이렇게 750만년에 다시 천만년을 더해 찾아 헤맨 ‘진짜 질문’을 제가 찾았다면 여러분들은 믿겠는가? 그 ‘진짜 질문’을 한 이는 약 2000년 전 척박한 사막에 살던 율법 교사다. 지금으로 치면, 철학, 신학 교수쯤 될까? 그는 인간으로 현신한 신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신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율법 교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또 묻는다. “그럼 누가 내 이웃입니까?” 신은 대답한다. “네가 스쳐 지나간 그 사람,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너의 이웃”이라고. 2500년 전 보리수나무 밑에 좌정했던 신 역시, 왕생(往生)의 요체인 행선(行善) 중 타인을 위한 공덕(功德)만 한 것이 없다 했다. 이 ‘진짜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신만의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니체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듯,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미래의 모더니티(근대성)가 현재와 미래를 만든다고 하면서, 향후 우리를 지배할 모더니티로 “하이퍼(인공물) 모더니티”를 꼽는다. 하이퍼 모더니티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극심한 경쟁이 만들어낸 것으로, 노동계약을 포함한 모든 협정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모든 이들이 네트워크에 의해 밀착, 근접 감시 상태에 놓이며, 심지어 인체까지 인공물을 많이 장착할수록 ‘모던하다’고 여겨지는 사회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이오, 나노, 로봇 기술 등인데, 이는 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영역이다. 이 하이퍼 모더니티의 끝은 어디냐고? 자크 아탈리는 불멸을 향한 욕망, 영원한 향락주의에 이끌려 인공물이 되어버린 인류는 결국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기도취적 인공물의 군집으로 전락할 것이라 경고한다. 그런 종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이오, 나노, 로봇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삼는 ‘이타적인 모더니티’라고 말한다. 그것을 통해서만 정체성과 창의성, 자유를 동시에 유지해나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수천년 전 사막 한가운데와 보리수나무 밑에서 했던 신들의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답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엔 답이 없다.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 국제단체는, 지금 바로 ‘긴급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마스크 한장 써보지 못한 채 4천만명의 빈곤국 사람들이 사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진국을 자처하던 나라들은 자신들이 급해지자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을 포기했다. 마스크라도 보내자고 하면 “우리도 없어 죽을 지경인데 무슨 소리냐”며 마스크 수출금지 조처까지 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부자 나라들은 백신이 나오면 자기네가 먼저 쓰겠다고 벌써 ‘백신동맹’까지 맺었다. 내 아픔 앞에 이웃은 없었다. 경쟁과 생산효율을 위해 스스로 기계가 되는 것도, 지구 파괴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바로 우리들이다. 자크 아탈리 역시, “이타적 모더니티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매우 좁다. 그것도 치명적으로 좁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마저도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히 살 수 있나요?”, “은하수로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라는 이 ‘진짜 질문’에 대한 답은 다시 더글러스 애덤스에게서 찾아야 할 듯하다. “과학자들은 싫어하겠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헬스장에서 사용한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방식’ 말이다. 자, 우주선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묻는다. “누가 당신의 이웃인가?”



June 24, 2020 at 04:1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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